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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GK 성명] '크레딧은 묘비가 아니라 주소가 되어야 한다' - 임오경 의원 「저작권법 일부개정법률안」 대표발의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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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GK
댓글 0건 조회 760회 작성일 26-09-1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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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GK(한국영화감독조합) 성명서 -


크레딧은 묘비가 아니라 주소가 되어야 한다

- 임오경 의원 「저작권법 일부개정법률안」 대표발의 관련



창작자 '정당한 보상' 저작권법 개정안 발의를 환영하며


DGK(한국영화감독조합)은 2026년 9월 17일 임오경 의원이 대표발의한 저작권법 일부개정법률안, 이른바 '정당한 보상' 법안의 발의를 깊은 환영의 마음으로 맞는다.

닷새 전 우리는 뤼미에르 선언에 부치는 성명을 이런 문장으로 맺었다. 이미 세계의 관객은 한국의 창작자를 발견했으니, 이제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가 그 창작자를 발견할 차례라고. 선언의 빛이 종이 위에 머물지 않고 제도가 되고, 계약이 되고, 창작자의 다음 영화가 되기를 바란다고.

그 바람에 대한 첫 대답이 이렇게 빨리 도착할 줄은 우리도 알지 못했다. 영사기의 빛이 처음 스크린에 닿는 순간, 어두운 객석은 잠시 숨을 멈춘다. 오늘 우리가 그렇다.


규칙을 받아 적는 나라에서, 함께 쓰는 나라로

지난 9월 7일 생폴드방스에서 대한민국은 프랑스와 나란히 공동의장국의 자리에 앉았다. 이재명 정부는 영화와 영상의 미래, 그리고 인공지능 시대의 문화적 거버넌스에 관한 두 선언을 세계와 함께 채택했고, 향후 5년간 5억 유로라는 구체적 약속으로 그 선언에 무게를 실었다.

오랫동안 한국은 남이 만든 규칙 속에서 경쟁해온 나라였다. 한국 영화는 그 규칙 안에서도 세계의 스크린을 차지했지만, 규칙 자체를 쓰는 테이블에 앉은 적은 드물었다. 이번 서밋은 대한민국이 문화의 규칙을 받아 적는 나라에서 함께 쓰는 나라로 옮겨 앉은 장면이었다. 우리는 그 문화외교의 성취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한 나라가 세계 앞에서 한 약속은, 결국 자기 나라의 법전 안에서 가장 먼저 검증된다. 뤼미에르 선언은 정당하게 보상받지 못하는 창작은 갱신될 수 없다고 적었다. 생폴드방스 선언은 각국이 인간이 만든 작품의 정당한 보상을 보장하도록 공공정책을 조정하라고 권했다. 오늘의 개정안은 대한민국이 서명한 그 문장들을, 서명한 나라답게 국내법의 언어로 옮겨 적는 첫 번째 번역이다.


끝나지 않는 상영, 단 한 번의 서명

영화는 이제 끝나지 않는다. 극장의 불이 켜지고 관객이 흩어진 뒤에도, 작품은 누군가의 거실에서, 퇴근길 지하철의 작은 화면에서, 지구 반대편 새벽 세 시의 침실에서 다시 상영된다. 한 편의 영화가 십 년 뒤에도, 이십 년 뒤에도 매일 밤 새로 개봉한다.

그러나 그 끝없는 상영을 떠받치는 계약은 대개 단 한 번 서명된다. 현행 저작권법은 특약이 없으면 감독과 작가가 작품의 이용에 필요한 권리를 제작자에게 넘긴 것으로 추정한다. 작품은 매일 밤 다시 태어나는데, 그것을 만든 사람과 작품을 잇던 끈은 촬영이 끝나는 날 소리 없이 잘린다.

영화가 끝나면 이름들이 올라간다. 우리는 오래 그 크레딧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것은 묘비인가, 주소인가. 작품이 어디서 몇 번을 다시 살아나든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크레딧은 한때 여기 누군가 있었다는 비문에 가깝다. 이번 개정안은 그 이름들에 비로소 주소를 붙인다. 작품이 살아온 시간이 돌아와 닿을 수 있는 주소를.


잔상이 끊기면 영화는 멈춘다

영화의 움직임은 눈의 잔상에서 태어난다. 1초에 스물네 장의 멈춘 사진이 지나갈 때, 앞 장면이 사라진 뒤에도 망막에 남은 잔상이 다음 장면과 이어져 우리는 그것을 움직임이라 믿는다. 잔상이 없다면 영화는 스물네 장의 정지된 사진일 뿐이다.

창작자의 삶도 그러하다. 한 작품과 다음 작품 사이에는 긴 암전이 있다. 수년의 기획과 거절, 고쳐 쓰는 시나리오, 그리고 기다림. 그 암전을 건너게 해주는 것은 이전 작품이 남긴 잔상, 곧 작품이 살아 있는 동안 그것을 만든 사람에게 조금씩 돌아오는 몫이다. 그 잔상이 끊기면 한국 영화는 이어지는 움직임이 아니라, 한 번 빛났다 사라지는 정지 사진들의 목록이 된다.

지금 많은 감독이 그 암전 속에 있다. 이름이 알려진 감독들조차 다음 작품을 기약하지 못하고, 첫 영화를 찍은 감독들은 두 번째 영화 앞에서 조용히 현장을 떠난다. 우리가 이 법을 기다려온 절박함은 더 많이 갖겠다는 욕심이 아니었다. 다음 컷으로 넘어가고 싶다는, 오직 그 작은 바람이었다.


이 법이 세우는 것, 그리고 흔들지 않는 것

우리는 이 개정안이 산업의 기둥을 흔드는 법이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 들보를 놓는 법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하고자 한다.

개정안은 영상저작물의 원활한 이용을 위해 마련된 현행 제100조의 틀을 그대로 둔다. 제작자가 권리를 모아 작품을 세상에 내보내는 구조는 유지되고, 그 위에 창작자가 작품의 긴 생애와 연결되는 통로 하나가 더해질 뿐이다. 부칙은 법 시행 전에 맺어진 계약의 효력을 그대로 인정한다. 이미 완성된 영화의 계산서를 다시 쓰자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만들어질 영화의 약속을 조금 더 공정하게 쓰자는 것이다.

보상의 크기는 누구도 일방적으로 정하지 않는다. 창작자 단체와 제작자, 사업자가 해마다 마주 앉아 협의하도록 했고, 이용 방법에 따른 보상 방식 역시 작품의 성격과 기여에 따라 협의로 달리 정할 수 있게 열어두었다. 이 법이 제도화한 것은 청구서가 아니라 대화의 테이블이다. 공적 기준은 그 대화가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할 때에만 개입한다.

또한 이 법은 보상의 무게를 제작 현장에만 지우지 않는다. 방송과 재송신, OTT와 영상 플랫폼처럼 작품이 최종적으로 관객에게 닿고 그 이용으로 이익이 발생하는 자리에서, 해당 사업자가 창작자에게 직접 보상하도록 했다. 계약서의 준거법을 바꾸는 것만으로 이 의무를 피할 수 없게 한 조항은, 국경을 넘나드는 거대한 유통 질서 앞에서 한국의 창작자와 한국의 제작자가 함께 등을 기댈 수 있는 최소한의 벽이다.

제작자는 우리의 가장 오랜 동반자다. 작품을 기획하고, 자본을 설득하고, 모든 위험을 끌어안은 채 촬영장의 불을 켜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 노고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보아왔다. 그렇기에 이 법이 대립의 선언이 아니라, 같은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그 영화의 긴 생애를 함께 책임지자는 제안으로 읽히기를 바란다.


이름 없는 신인을 위한 한 줄

개정안은 보상받을 권리를 미리 포기하거나 넘길 수 없도록 했다. 어떤 이에게는 이것이 계약의 자유를 좁히는 조항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이름난 감독은 계약서에 한 줄을 더 적어 넣을 수 있다. 첫 영화를 앞둔 신인은 그럴 수 없다. 서명하지 않으면 영화가 없고, 영화가 없으면 감독도 없기 때문이다.

이 조항은 협상할 힘이 가장 작은 사람, 자신의 첫 크레딧을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 쓰였다. 신인에게 기회를 주는 일과 신인의 권리를 지키는 일은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권리가 지켜진 첫 영화여야, 그 신인에게 두 번째 영화가 있다.


진영을 넘어, 긴 암전에 들지 않도록

이 법안은 하루아침에 쓰이지 않았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되었으나 끝내 문턱을 넘지 못했고, 지난해 6월 30일에는 여야의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가 함께 주최한 공청회에서 그 필요성이 다시 확인되었다. 감독과 작가, 배우, 독립PD들이 창작자 연대라는 이름으로 한자리에 모인 것도 이 박절한 과제를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어느 한 진영의 요구가 아니라, 한국 콘텐츠의 다음 세대를 걱정하는 모든 이의 공통 과제다.

국회에 요청한다. 이 법안이 또다시 긴 암전 속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여야가 함께 신속하고 성실하게 심사해주기를. 정부에 요청한다. 창작자 단체의 요건과 정보 제공의 방식을 정할 하위 법령이 선언의 취지대로 실효 있게 설계되도록 힘써주기를. 그리고 제작자와 플랫폼에 제안한다. 법이 완성되기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부터 같은 테이블에 앉자고.

권리는 책임과 함께 온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은 이 권리가 주어지는 날부터, 보상을 투명하게 산정하고 공정하게 분배하며 그 과정을 동료와 산업 앞에 열어두는 권리 단체가 되기 위한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겠다.


씬1

뤼미에르 형제의 첫 상영에서 관객들은 스크린 속으로 달려드는 기차에 놀라 몸을 피했다고 전해진다. 그로부터 백삼십 년, 이제 그 기차는 모든 사람의 주머니 속으로 달려 들어온다. 달라지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그 기차는 여전히 누군가가 만든 것이다.

오늘 발의된 법안은 아직 한 편의 시나리오다. 심사라는 촬영도, 조율이라는 편집도, 시행이라는 개봉도 남아 있다. 그러나 모든 영화는 첫 장의 '씬 1'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 첫 장을 써 내려간 이들에게 감사하며, 이 이야기가 끝내 스크린에 걸리는 날까지 함께 걷겠다.

이름만 남고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던 크레딧의 시대를 닫고, 그 이름을 따라 작품의 삶이 돌아오는 시대를 열자.

 

2026년 9월 17일

DGK(한국영화감독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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